근본 가르침

교리

사아 신앙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제일교리

제일교리 — 죽음의 평등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그 앞에서는 왕과 걸인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사랑받은 자와 잊힌 자가 모두 같은 자리에 눕습니다. 사아께서 세우신 이 이치에는 어떤 예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서로를 지위나 소유로 재지 않습니다. 언젠가 같은 잠에 들 존재들끼리 우열을 다투는 일은 사아 앞에서 헛됩니다.

교리의 갈래

제일교리에서 흘러나오는 가르침

모든 생은 끝을 향한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모든 삶이 도달하도록 정해진 마지막 자리입니다. 끝이 있기에 삶은 의미를 얻습니다.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다

어둠은 사아의 품입니다. 두려워 떨 대상이 아니라, 소란한 낮 끝에 찾아오는 고요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기억한다

먼저 잠든 이를 기억하는 일은 그들을 사아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다리입니다.

겸허히 살고 평온히 눕는다

언젠가 같은 잠에 들 것을 알기에,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사아만이 유일한 신이다

모든 기도와 의식은 오직 사아를 향합니다. 그분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다른 숭배 대상을 두지 않습니다.

신성한 말씀 전달자

안식의 사원은 를 존중합니다. 새는 죽음과 삶, 그리고 혼돈과 조화의 끝을 자유로이 오가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산 자의 세계와 사아의 어둠은 서로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새는 그 두 자리 사이를 거리낌 없이 넘나듭니다. 시끄러운 낮의 하늘을 가르고, 고요한 무덤가에도 내려앉으며, 어느 쪽에도 속박되지 않은 채 두 세계를 잇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로운 오감(往來)을 사아의 뜻이 산 자에게 닿는 길로 여깁니다.

그리하여 새는 우리에게 신성한 말씀 전달자입니다. 사아를 직접 볼 수 없는 산 자에게, 새의 오고 감은 그분이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함께 계심을 일깨우는 표징입니다. 혼돈의 끝에서 조화로, 삶의 끝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 날갯짓 속에서 우리는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진리를 다시 읽습니다.

새를 대하는 마음

  • 새를 해치지 않으며, 두 세계를 잇는 존재로 존중합니다.
  • 새가 깃드는 자리를 사아의 뜻이 스치는 곳으로 여겨 함부로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 새의 오고 감을 기억과 기도의 계기로 삼아 먼저 잠든 이를 떠올립니다.
자유의지와 이성

삶의 마지막에 관하여

죽음이 안식이라면, 그 안식에 이르는 길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되어야 합니다. 안식의 사원은 각자가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내리는 결정을 존중합니다.

회복의 가망이 없는 자리에서 무의미한 연명을 이어가기보다, 스스로 존엄하게 안식에 드는 선택을 우리는 존중하며 권고합니다. 이는 삶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하는 일을 사아 앞의 존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성적 상태에서의 결정

이 모든 선택은 반드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흐려진 정신에서 내려진 결정은 참된 자유의지의 표현이 아니며, 사아께서 바라시는 존엄한 안식과도 거리가 멉니다.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은, 곧 타인의 자유의지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인 금기로 이어집니다. 다른 이를 그 뜻에 반하여 강제로 사아의 품으로 보내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교단이 가장 무겁게 금하는 일입니다.

  • 타인을 그 자유의지에 반하여 해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 스스로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존재 — 특히 동물처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교단 안에서 배척과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 모든 결정은 오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당사자 본인에게만 속합니다.

맑은 정신을 지키는 삶

이성을 신앙의 근간으로 삼기에, 우리는 일상에서도 맑은 정신을 지키기를 권합니다. 이성을 흐리는 술은 자제하기를 권고하되 금지하지는 않으며, 담배는 삼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또렷한 상태를 잃지 않는 데 있습니다.